[선임기자 칼럼]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입력 2018-01-24 18:09   수정 2018-01-25 07:18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 박기호 기자 ]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경남 창원의 STX조선 폭발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유가족을 위로하고 원인 조사와 조치를 지시하는 모습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맞물려 감동적이기에 충분했다.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제로화, 노사정 대화 등 최근의 굵직한 노동 현안에서는 활약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에 빛이 바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용부 OB(전직 관료)나 주변 유관단체 인사들 얘기는 다르다. ‘취임 이후 나타나고 있는 김 장관의 행보가 아쉽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지만 되돌아보고 고치는 지혜는 필요한 법이다. 만약 김 장관이 노동 이슈에 천착했다면 어땠을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최저임금은 고용부의 고유 업무다. 어느 부처보다 잘 알고, 예상 문제도 충분히 짚을 수 있었던 터다. 지난해 8월4일 공표된 ‘2018년 적용 최저임금 고시’의 주체는 고용부 장관이다. 취임한 이후지만 부처 안팎의 경고음을 듣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자영업자 부담이나 고용 회피 등 디테일을 챙겼다면 어땠을까.

부족한 섬세함의 리더십

근로시간 단축도 ‘68시간 근로’에 대한 고용부의 유권해석에서 비롯된 문제다. 주무부처로서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장관이 사과하는 것으로 그쳤다. 노사정 대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는 마당에 주무부처 장관이 적절한 입지와 위상을 세우지 못한다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물론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으로부터도 카운터 파트(협의 상대방)로 인정받기 힘들 게 뻔하다. 아무리 미묘할지라도 장관의 위상 격하는 어떤 형태로든 노사관계 정책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소통의 리더십이 강했다면 어땠을까. 장관, 특히 비관료 출신 장관의 능력은 부처 간부들의 보좌 기능을 얼마나 적절하고 적확하게 활용하느냐로 귀결된다. 보좌 기능을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려면 소통의 리더십이 필수다. 그런데도 “장관 보고를 실장은 국·과장에게, 국장은 과장에게 떠넘긴다더라”거나 “늘공(늘 공무원, 직업 관료)을 장악하기 위한 지렛대로 장관이 데려온 보좌관 출신 간부들의 위세가 대단하다더라”는 비판이 들려온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대표적 적폐 부처로 찍힌 터에 장관 주변을 점령군 아닌 점령군이 자리잡고 있다면 소통은 기대난일 수 있다.

미래의 가정법은 타산지석

노동행정의 특성을 감안했다면 어땠을까. 파리바게뜨 제빵사 53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고용부 조치는 사실상 김 장관의 첫 작품이었다. 고용부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본부와 산업현장의 적정성을 따져보고 시정하는 지방청이 있다. 서울 지역 업체에 대한 시정조치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나 지청이 수행하는 업무다. 지청이나 지방청에서 사실관계를 조사해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본부는 중장기적 대책을 내는 게 맞다. 파리바게뜨의 경우 장관이 불법파견이라는 잣대를 엄중하게 들이대고 과태료 처분부터 내렸다. 사안이 아무리 중대하고 시급해도 절차의 적정성과 공정성을 결여했다면 좋은 행정일 수 없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미래에는 있다. 사전적 준비와 대처다. 그러려면 과거를 돌아보고 아쉽고 부족한 곳을 찾아 고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자세가 필요하다. 고용노동 행정은 노동 존중 사회를 실현하고 저마다의 경쟁력이 훨씬 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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